[문희순의 충청女지도] 詩로 소통하는 부부, 자녀 모두 문학인으로 키워내
[문희순의 충청女지도] 詩로 소통하는 부부, 자녀 모두 문학인으로 키워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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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재·김성달 부부가 살았던 충남 홍성군 갈산면 오두리 마을 원경. 간척사업으로 바다가 논으로 변경됐다. 변영호 씨 제공
바닷물은 아침마다 저절로 오고 가는데(해수조조자거래) / 어부가 그물 드리워 고기 잡아 돌아오네.(어인수망득어회) // 은비늘 물고기 팔딱팔딱 배 안에서 뛰고(은린발발주중약) / 갯가의 아낙 서로 부르며 웃음꽃 피었네.(포구상호소구개) (이옥재 시, '호상사경')
넓은 바다 외로운 돛단배 아득히 하늘에 닿았고(해활고범미원천) / 흰 갈매기와 어부 나란히 한가롭게 졸고 있구나.(백구어자공한면) // 밤사이 내린 비는 잦아들어 찾을 곳이 없는데(야래수락무심처) / 오직 구름 사이로 밝은 달 휘영청 걸려있도다.(유견운부채상환비율
간명월현) (이옥재 시, '차운')
위의 두 시는 이옥재(李玉齋, 1643-1690) 시인이 지은 것이다. 시인이 살고 있는 오두리 한적한 어촌의 인문지리 공간이 잘 묻어나 있다.
'호상사경'시는 바닷물이 밀려 왔다 밀려가고, 어부가 물고기를 잡아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데, 은비늘 물고기가 배 안에서 희번덕 팔딱거리고, 포수원개인회생
구의 아낙네들은 서로 부르며 웃음꽃이 만발한 그런 풍경이다. '차운' 시 역시 넓은 바다와 수평선, 그 바닷물 위에 유유히 떠 있는 외로운 돛단배. 어부는 흰 갈매기와 함께 한가로이 졸고 있고, 비 갠 날의 밝은 달이 구름 사이에 걸려 있다.
'호상사경'과 '차운' 시는 강마을·어부·고기잡이·물고기·팔딱거리는 물고기의 생명력·갯가의 수런수새마을금고 이자
런 아낙들의 웃음소리·외로운 돛단배·흰 갈매기와 어부의 졸음·구름·비·휘영청 밝은 달 등 삶의 공간 속에서 만나는 풍경과 일상을 노래함으로써, 정중동(靜中動), 동중정(動中靜)의 어촌 풍정이 시적 자아의 충만한 감성 속에 녹아져 표현되어 있다. 이옥재의 시는 이렇듯 은미하고 자연스러운 '청신미(淸新美)'의 미학세계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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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군 청산면에 위치한 이옥재·김성달 부부 묘소.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제공
◇박학다식한 여성 지식인=이옥재는 17세기 조선의 여성 지식인이요, 문학인이다. 이옥재의 남편 김성달(金盛達, 1642-신한마이카대출자격
1696)은 아내에 대해 '많이 듣고, 많이 보고, 많은 것을 알았던 사람(多聞多見復多知)'이라고 평가했다.
'옥재(玉齋)'는 자신이 지은 호이고,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이옥재는 연안이씨이다. 월사 이정구(1564-1635)가 증조, 현주 이소한(1598-1645)이 할아버지, 동곽 이홍상(1619-1645)이 아버지이다. 이옥재의 증르노sm7 노바
조 이정구는 조선중기 문장4대가 중 한 사람이다. 이옥재의 할아버지인 이소한의 네 아들 은상·홍상·유상·익상과, 큰할아버지인 이명한의 네 아들 일상·가상·만상·단상 여덟 형제가 주고받은 시는 '연주집'이라는 시집으로 간행되었는데, 조선시대에 꽤나 이름이 났다.
이옥재는 이렇듯 친정의 남다른 문학 환경과 전통 속에서 성장하였으므로, 소녀 시할인율 계산기
절에 경서와 시문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남편 김성달 역시 혹독하리만치 문학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김성달의 시 창작 애호는 자식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증언이 넘쳐날 정도이다. 김성달의 시 창작에 대한 특별한 집념은 고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평이 날 정도여서, 당시의 문학인들이 모두 탄복했다고 한다. 비가 내려 지붕이 새서 방 안에 빗물이 고저소득가구 전세자금대출
이는데도 개의치 않고 시구 엮는 일에만 골몰하였다는 일화가 있기도 하다.
이옥재의 한시 작품은 부부시집 '안동세고'에 71수의 작품이 전해진다. 시의 주된 내용은 가족과 공유하는 행복한 일상, 오두리 어촌의 풍정, 벼슬살이로 집을 떠나있는 남편에 대한 이별과 그리움,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의 맹서, 인생 만년 질병에 시달리는 모습 등이다.카드대출
김성달은 아내가 읊은 한시작품에 대하여 '맑고 산뜻하다(淸新)'거나, '매우 아름답다(佳甚·絶佳)'고 평가를 했고, 본뜻을 헤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고쳐주기도 했다.
이규경의 '시가점등'에 수록된 이옥재·김성달 부부의 가족문학사.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제대출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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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신뢰하고 격려한 부부문화=이옥재는 48세의 나이로 운명하기까지 남편과 서로 신뢰하고 격려하며 시로써 소통하는 부부문화를 가졌다. 이옥재 부부는 평생을 금슬 좋은 부부로 살았다. 서로 사랑하고 존중했다. 김성달은 벼슬살이로 집을 떠나 있게 될 때면 매번 안부 편지와 시를 써서 보냈고, 이옥재도 안부와 그리움을 실어 화답했다. '안동세고'에는 그러한 정경이 절절히 묻어 있다.
'안동세고'에는 총 249수의 한시가 실려 있는데, 이옥재의 시 71수, 김성달의 시 177수, 이옥재의 친정아버지 이홍상의 시 1수로 돼 있다. 이옥재의 시는 남편과 주고받으며 지은 시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서, 시의 제목도 자연스레 '원운(元韻)'과 '차운(次韻)'이 많다. 이옥재 부부의 사랑과 믿음을 바탕으로 한 연가적 한시는, 작품 수의 측면에서도 독보적이다.
이옥재 부부는 '시 내기 바둑'을 즐겼다. 바둑에서 진 사람은 약속에 따라 벌칙으로 시를 지었고, 이긴 사람은 벌칙 시에 화답하는 댓글시를 지었다. 한가로울 때에는 술병을 들고 서해안 저 먼바다가 보이는 '반구헌' 누각에 올라 고기잡이배가 마을 어귀로 돌아오는 광경을 노래하곤 했다. 취흥이 일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시를 짓고, 운자를 내줬다.
김성달은 시 속에서 부인을 부를 때 군(君)·이군(李君)·규인(閨人)·실인(室人)·내(內)·옥군(玉君)·소군(小君)·옥인(玉人)·옥재(玉齋)·세군(細君)·가인(家人)등의 호칭을 썼고, 이옥재는 남편을 부서(夫壻)·왕손(王孫)·주군(主君)·가옹(家翁) 등의 호칭을 썼다. 김성달이 이옥재에 대하여 '옥같이 귀한' 사람으로 여겼던 점이 호칭에서도 잘 드러난다. 부부간에 호칭이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깊이가 넓고 신선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다음 시는 이옥재와 김성달 부부가 맹약한 사랑의 연가이다.
청주옹과 더불어 옥재의 즐거움은 / 바다와 산에 맹세하여 일편단심이네. / 백년가약 중한 인연 하루와 같이 / 백발에 마주해도 함께 평안하다네. 靑州翁與玉齋歡(청주옹여옥재환) / 誓海盟山不改丹(서해맹산불개단) // 緣重百年如一日(연중백년여일일) / 白頭相對共平安(백두상대공평안)(이옥재 시, '희음')
끝없는 정 있음에 끝없이 기쁘니 / 백발 꺼려 않고 일편단심 함께하네. // 다시 모름지기 세세토록 부부되어 / 저승에서도 복록 누리며 평안하리라. 無限情存無限歡(무한정존무한환) / 不嫌垂白共披丹(불혐수백공피단) // 還須世世爲夫婦(환수세세위부부) / 福祿他生享自安(복록타생향자안)(김성달 시, '차내희음시')
위의 '희음' 시는 이옥재가 먼저 남편에게 보낸 일편단심의 연가이다. 시 첫 구에서 '청주(靑州, 靑洲)'는 김성달의 호이다. 김성달은 아내의 '희음'시에 대하여 화답시를 보냈다. "다시 저승에 가서도 부부가 됩시다."라고.
이옥재 친필 한글편지.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제공
◇'압동고금미증유'의 전가족문학사 일궈내=이옥재는 슬하에 5남 4녀를 두었다. 9남매 가운데 22세에 요절한 일곱째 김시흡을 제외한 여덟 자녀의 시가 '연주록'에 실려 있다. 현재 개인 문집이 전해지고 있는 자녀는 여섯째 김시제의 '도옹유고'와 여덟째 호연재의 '호연재유고'가 있다. 자녀들은 이옥재의 문학교육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일찍이 김호연재의 9세손 송용억은 '호연재유고' 영인본을 발간하면서, 김호연재의 문학 연원이 어머니로부터 기인하였다고 기술한 바 있다.
이옥재 부부의 화목하고 조화로운 부부상은 아들과 딸들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되었고, 부부의 삶의 방식은 자녀의 인문적 감성에 영향을 끼쳤다. 자녀들은 각자의 가슴에 시를 품었고, 시로써 형제애를 승화시켰다.
조선후기 문학평론가 이규경(1788-1856)은 '시가점등'이라는 책에서, 이옥재·김성달 가족의 부부시집과 연주록을 주목하며 대서특필하였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일찍이 있지 않았던(鴨東古今未曾有)' 불후의 전가족문학사를 일궈낸 집안이라는 것이다. 이규경은 특별히 이옥재와 딸들의 작품을 가려 뽑고, 궁극의 한시미학을 표현한 시로 평가했다.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제공